Category: interview

  • 인터뷰 | 백지윤 선생

    인터뷰 | 백지윤 선생

    가을 색이 하나가 아니듯, 단풍 한 잎에 십수 개의 색을 담고 있듯,

    한 해의 끝을 향하며 우리네 삶도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무르익은 일상의 색에 신앙과 예술로 진하게 화두를 던져 줄, 2025년 마지막 강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문화에 녹아든 예술, 특히 현대미술을 그리스도인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마치 일정 거리를 둬야 하는 경계의 영역처럼 여겨 왔습니다. <VIEWtiful 인문학> 3학기 두 번째 강의는 낯설고도 가까운, ‘현대미술이라는 도구로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기독교적 가치와 현대미술이 담아내는 언어의 만남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까요?

    그 대화의 중심에서 이끄실 분은, 미술사와 기독교 문화학을 공부한 뒤, 현재 밴쿠버에서 수많은 신학 저서들을 번역하고 계시는 백지윤 선생님이십니다. 강의에 앞서, 반갑게 지면으로 만나봅니다

    저도 VIEWtiful 인문학 강좌에서 제게 가장 중요한 신앙과 예술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강의를 하게 되어서 기쁘고 기대가 됩니다. 대학 시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름 극적인(?) 회심을 한 뒤, 내가 공부하는 전문 영역 역시 기독교 신앙과 통합할 수 있고, 통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학원에서 전공하던 ‘현대미술사/미술이론의 영역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평소 유진 피터슨, 제임스 패커 등의 책을 읽으며 동경하던 캐나다 밴쿠버의 리젠트 컬리지로 유학을 오게 되었어요. 본격 신학을 공부하려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원래는 리젠트에서 짧게 공부를 마친 후 미술사 박사 과정을 이어갈 계획이었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계획이 바뀌었고 어쩌다보니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감사하게도 미로슬로브 볼프, 톰 라이트, 티시 해리슨 워런 등 훌륭한 신학자와 기독교 사상가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번역 일을 꾸준히 하면서도 한편으론 오래 전 품었던 기독교와 현대미술의 간극을 잇는 역할에 대한 아쉬움과 부담감이 늘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VIEW 콜로키움에서 평화와 현대미술을 연결해서 살펴보는 특강을 할 기회를 얻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21년부터 미주 코스타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세미나 강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요즘은 <복음과 상황>에 “예술, 구원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쓰다 보니 간단한 소개가 아니라 너무 길어졌네요.

    그동안 교회에서 관심을 갖는 예술은 기독교적 주제와 도상이 좀 더 분명하고 풍부했던 과거의 고전적 미술에 제한되어 있었지요. 그에 반해 저항과 도전의식이 강한 도발적인 현대미술은 낯설고 뭔가 위험한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고요. 특히 오늘날 타락한 세상의 문화속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주장하고 기독교적 가치를 관철해야 한다는 ‘문화 전쟁’ 패러다임은 현대미술에 대한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부추겼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현대미술을 제대로 알고 배우려는 노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무지에 근거한 배제와 단절의 골만 깊어갔고요. 제가 대학원에서 전공한 분야가 현대미술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런 간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잇는 다리의 역할이 얼마나 부족하고 필요한지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평소 낯설고 난해하게만 다가왔던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현대미술이 어렵고 난해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아요. 어쩌면 예술, 특히 시각예술이란 쉽게 이해되고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혹은 어떤 노력이나 선지식 없이도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기대를 거스리는 게 현대미술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에 대한 해석이 관객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 역시 오히려 현대미술이 의도하는 바이기도 하고요. 처음엔 납득이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현대미술이 발전해온 고유의 내러티브와 전통을 알고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앞에서도 말했듯 교회가 현대미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경계했던 이유를 다시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교회 내의 많은 부분이, 교회 밖의 이들에게는 폐쇄적이고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현대미술보다 더 잘 드러내주는 것도 없으니까요. 어렵고 난해하고 심지어 위험해 보이는, 우리의 경계 너머에 있는 현대미술의 세계로 다가서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나와 다른 낯선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화의 환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미술은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우리 자신과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해주고, 결국 인간의 충만함을 회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동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갇혀 있던 좁은 틀을 보게 하고, 인간 본연의 자유를 좀 더 온전히 누리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이지요. 한스 로커마크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이 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했던 것처럼요.

    기독교와 현대미술의 세계를 연결하고자 할 때, 기존의 일방적 선포와 가르침의 방식을 벗어나서 쌍방향의 대화를 지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대미술 자체의 문법과 어휘, 작동 방식을 존중해야 하고요. 그렇지만 한편으론, 그 대화가 우리의 기독교 신앙에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화의 방향을 잡아갈 신학적 주제를 잘 선별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할 텐데요. 평화, 환대, 아름다움, 새 창조라는 주제는 어쩌면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은 주제이고, 그래서 더욱 주목하고 회복해야 할 중요한 신학적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더 깊이 탐구하고 발전시켜가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고요.  현대미술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바라볼 때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대화의 키워드로 잡아보았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하고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되면 좋겠고, 그런 점에서 무척 기대되고 설레기도 합니다. 그 중 구체적으로 하나만 예를 들자면, 독일 작가 볼프강 라이프가 생각납니다. 미니멀리즘의 예술 언어와 개념미술, 퍼포먼스의 테두리 안에서 작업하면서도, 재료와 작업 방식이 생태친화적인 작가인데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일깨워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밴쿠버 아트 갤러리를 방문했는데, 문을 닫을 시간이 거의 되어가던 무렵이었거든요. 빠른 속도로 갤러리를 훑어보는데, 얼핏 멀리서 미술관 스텝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뭔가를 닦고 있는 게 보였어요. 저는 문닫을 시간이 되니까 청소를 하나보다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밀크 스톤>이라는 라이프의 대표적인 작품을 관리하는 직원이었어요. <밀크 스톤>은 사각형 대리석 판의 윗부분을 아주 세밀하게 살짝 깎아서 그 위에 우유를 부어놓는 작품인데요. 그래서 아침마다 새로 우유를 붓고 전시장이 문을 닫을 때는 그 우유를 모두 닦아내야 하거든요. 전시 기간 내내 이 과정을 매일 반복하는 거죠. 제가 보았던 그 사람은 세 달 정도의 전시 기간 동안 그 일을 위해 미술관에서 임시로 고용한 직원이었는데, 로컬 아티스트라고 하더군요. 라이프의 유명한 작품을 우연히 직접 보게 된 것이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그 직원과 한참 동안 라이프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유쾌한 기억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을 도판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만날 때 느끼는 쾌감이 있거든요.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도 그런 경험을 꼭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직접 경험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 뭔가를 알아가고 배울 때 쉬운 지름길은 없는 법이니까요.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C.S.루이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지요. 어떤 예술이든 우리에게 내미는 첫 번째 요구는 항복(surrender)이다. 보고, 듣고, 받아들여라. 당신 자신을 내려놓아라.” 

    ‘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술관에 가거나 책을 보다가 마음을 훅 치고 들어오는 작품을 혹시 만난다면, 그 작품 혹은 작가를 현대미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창문, 혹은 입구로  삼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현대미술의 세계가 처음엔(저에겐 아직도 그렇답니다) 너무 방대하고 복잡다단하다보니, 솔직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잖아요. 한두 작가, 작품을 중심으로 찾아보고 공부하다보면, 그와 연관된 다른 작가나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면 조금씩 현대미술이 익숙해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현대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좋은 책이나 에세이를 읽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예술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예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술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형상(image)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간의 창조적 행위, 우리의 인간됨을 가장 잘 표현하는 활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고유한 방식과 매체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지요.

    먼저 현대미술이라는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에 관심을 갖고 수강을 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번에 현대미술의 세계를 통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평소에 가지고 있었을 경계심이나 거리감은 조금 덜어내고 그 자리에 친근함과 관심으로 채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우리의 삶과 신앙,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과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여유로워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너무 상투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매 시간 열린 귀와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미 내가 알고 믿는 것에 대한 확신보다는, 새롭게 발견하고 알아갈 것에 대한 기대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가을 색으로 삶을 물들이다가, 더욱 깊어진 가을날 함께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 인터뷰 | 박정위 교수

    인터뷰 | 박정위 교수

    뜨거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스며드는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계절이 바뀌듯, 사회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모습을 데이터로 기록합니다.

    뷰티풀 인문학은 가을 새 학기, 통계적 분석과 사회학적 시선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와 교회를 읽는 특별한 여정을 준비했습니다. 종교와 사회 통계라는 낯설지만 긴요한 언어를 통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과 현실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기를 기대하는 자리입니다.  또한 숫자 너머의 이야기, 통계를 읽고 쓰는 법을 배움며 우리 사회와 신앙, 공동체에 던지는 메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흥미롭고 기대되는 강의를 이끌어 주실 분은 바로 캐나다 연방정부 통계청과 오타와 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활발히 연구 중이신 박정위 교수님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교수님의 시선과 통찰을 미리 엿봅니다.

    뷰티풀 인문학 수업 수강생 여러분과 관계자분들, 정말 반갑습니다!

    소개해 주신 대로 캐나다 오타와에서 정부와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박정위입니다. 연방정부에서 모든 분야의 통계를 관장하는 Statistics Canada에서 건강, 노동 관련 주제의 분석관으로 20여 년간 일해 왔습니다. 같은 기간 매 학기 오타와 대학교에 출강하여 사회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수업은 굉장히 여러 가지를 했는데 최근에는 연구방법, 인구학, 건강사회학 등에 집중해 온 것 같습니다.

    음…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마도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은 사회 통계를 이미 사용하고 계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을 통계에 영향받고 있거나 의존하는 면이 모르는 사이에 커진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사회통계에 대한 조금 체계화된 논의를 통해서 이미 사용하고 계신 통계들을 좀 더 잘 알고 활용할 수 있도록 이 수업이 도와드리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로군요. 생각을 유발시키는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교회에 아주 열성적이지는 않으셨지만 따뜻한 신앙을 가지셨던 부모님들로부터 사남매가 믿음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형제들은 한 달에 한 번 빠짐없이 줌으로 만나서 애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의 건강도 걱정하며 이런저런 담소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형제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신앙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것이 여러 가지 요인을 따지고 증명을 강조하는 분야의 공부 때문인지, 믿음의 태도까지 그러다 보니 그와 같은 전공을 하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네요. 아, 그리고 수업을 하게 된 계기는 최종원 교수님으로부터 권유를 받아서입니다. 권유가 없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마침 지난 1년 반 정도 기독교사상에 시리즈로 글을 썼기에 그 내용을 중심으로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딱한 훈련이 아니라 통계를 의심하고 해석하는 재미있는 게임처럼 하고 싶습니다. 통계를 잘못 쓰면 사실을 왜곡할 수 있으니 물론 비판적인 검토를 해야 합니다만, 또 다른 한편으로 염두에 둘 것은 생각처럼 통계가 딱 떨어지는 과정이 아니고 결과도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변수를 정의하고 어떤 가정에서 출발하는가 하는 일들이 결과를 제한하게 되는데, 연구에선 꼭 필요한 절차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통계를 쓰거나 읽을 때 그 기본전제와 제한점들을 잘 숙지하는 것이지요. 그 일이 잘 되면 보다 창의적이고 통찰적으로 통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깊이 들어가자면 한 가지 한 가지가 한 학기 내내 해도 충분할 주제들일 수 있어요. 내용적으로는 모두 소중하고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만, 어떤 주제는 통계 데이터에 의한 설명과 토론을 보다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보다 자세한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하고 전에 없던 분석을 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이민자들 중 기독교인 비율이 몇 퍼센트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이민자들이 10년 뒤, 20년 뒤의 기독교 신앙 비율을 볼 수 있다면 훨씬 더 흥미진진하겠죠.

    그냥 재미있는 제목을 붙이고 싶었던 것인데요. 놀라운 것은 성경에 그것도 구약에 인구조사 센서스를 다루는 민수기라는 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민수기, 이 타이틀이 통계가 신앙을 말하는 언어도 될 수 있다는 인상을 주길 바랍니다.

    과거 근대화이론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는 어떤 국가의 오늘을 보면서 다른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요즘은 북미사회가 한국의 미래라고 할 수는 없겠고 오히려 반대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많은 부분에서 같거나 비슷한 현상들이 지구의 다른 지역들에서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오늘의 미국과 캐나다는 여러가지 논쟁적인 사회적 이슈를 둘러싸고 종교와 정치의 치열한 상호작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나타나는 북미 사회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면 한국 사회와 교회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생각의 틀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부 연구가 정책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서 사회의 조건을 개선시키는 데 분명히 일조하겠지만, 저널리즘과는 달리 영향의 속도가 느리고 많은 노력의 집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특정 연구의 직접적인 효과를 감지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연구자는 연구의 선한 효과가 있기를 믿고 희망을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그런 희망으로 취약 인구층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원주민, 성소수자, 여성, 노인, 아동에 대한 연구 등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독교사상에 북미사회의 이슈와 기독교의 반응에 관한 원고들을 집필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여러 사람들과 폭넓은 대화로 나누는 기회는 그렇게 많이 갖지 못했어요. 늘 나의 이야기가 너무 동떨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했습니다. 이번 강좌를 통해 학생분들과의 격의없는 대화와 토론을 나누면서 얻게 될 배움에 큰 기대를 합니다.

  • 인터뷰 | 임자헌 선생

    인터뷰 | 임자헌 선생

    한껏 짙어진 녹음이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이란 것을 실감케합니다.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이 과실의 단맛을 내듯, 우리가 만날 무더운 여름날엔 ‘동양고전’의 별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2천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속에서 ‘고전’이 우러내는 깊은 맛과 현대에 새롭게 해석되어진 상큼발랄함을 동시에 느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2025년 <VIEWtiful 인문학> 2학기의 두 번째 강의를 열어가실 분은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위원이시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계시는 임자헌 선생님입니다. 평소에 혼자서는 쉽게 덤벼들지 못했던 동양고전에 대해 함께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요. 이번 <동양고전 첫걸음>에서는 동양고전 중에서도 유학의 핵심서인 사서(四書)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강의를 준비하고 계시는 임자헌 선생님께 궁금한 것들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기독교 세계관을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인으로 자랐습니다. 어느 순간, 기독교란 교회에 가서 늘 비슷한 설교를 듣고 헌금을 하는 그저 그런 일상의 반복일 뿐인가, 하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총체적 진리로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건 참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기독교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넓은 시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느날 즐겨보던 월간지 『복음과상황』에서 <VIEWtiful 인문학>의 광고를 보았는데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강의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갑자기 이곳에서 제게 강의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제가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

    학부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사회에서는 미술잡지 기자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미술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사실 중고등학교 때 대학진학을 미술 쪽으로 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잡지사에 있다 보니 한 단계 더 도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미술평론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자니 대학원 진학이 필요했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는 영어와 제2외국어를 해야 했습니다. 제가 이미 어느 정도 익혀두었던 제2외국어는 프랑스어였는데, 영어와 함께 준비하자니 둘 다 비슷한 언어권의 언어라 크게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2외국어를 바꿀 생각을 했습니다. 시험에 해당되는 언어들을 살펴보니 할 만한 게 ‘한문’이 있더군요. 어차피 미술잡지에서 전통미술 분야를 맡고 있어서 대학원 진학을 해도 전통미술 쪽을 전공할 것이었기 때문에 한문을 해두면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과감하게 프랑스어를 버리고 한문을 선택했고, 그때 처음으로 한문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한문을 『논어』로 접했습니다. 고루하기 그지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 걸? 공자는정말 합리적이고 세련된 사람이더군요. ‘오! 이름이 오래 전해지는 건 진짜 이유가 있는 것이구나’ 새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깊이 흥미를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완전 입말 현대 한국어로 『논어』와 『맹자』를 완역했습니다. 『공자의 말들』과 『맹자의 말들』이 바로 그 책이지요.

    대체로 사람들이 동양고전에 대해 갖고 있는 참 재미있는 오해, 혹은 고집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동양고전은 한문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기독교인 중에 성경을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읽어야만 제대로 읽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리스 철학책을 보려면, 그러니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보려면 고전 그리스어로 봐야 한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난히 동양고전에서는 한문의 부담을 느끼십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스스로에게 맞는 쉬운 우리말 번역본을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익숙해지시고 나서 굳이 원문이 궁금하시면 그때 한문에 도전하시면 됩니다. ^^

    조선은 유학을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이란 말이 지금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합니다. 그러나 유학을 제대로 배워 본 기억은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랜 생각의 뿌리는 유학에 있는데, 사실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유학은 상명하복을 중시하고, 어른 공경을 외치는 굉장히 고루한, 끝물의 변질로 가득한 유학이어서 유학을 배운 입장에서 안타까울 때가 참 많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신을 이해하려면 한반도에서 500년 이상을 이어왔던 유학을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이 사서(四書)입니다. 사서(四書)의 각각의 책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유학의 큰 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문을 처음 배울 때 교회에서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배워보며 느낀 것은 기독교와 충돌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죠.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로 통하는구나’ 새삼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요. 실제로 기독교를 조선에 받아들인 것은 조선의 유학자들이었는데, 정말로 그럴 만했습니다. 유학과 맞서는 면보다 도움이 되는 면이 크거든요. 아마 이번 강의를 통해 기독교와 통하는 유학의 아름다운 측면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한문은 문법이 없습니다. 아예 없진 않지만 내재적 문법이라 문법책이 따로 있지 않고 사서(四書)를 통해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고유명사 표기나 인용 표기 혹은 문장부호가 없습니다. 의미절을 끊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한문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한문은 인용할 때 마음대로 글자 수를 줄여버리기도 합니다. 긴 문장을 단 두 글자로 축약해버리기도 하죠.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으면 내가 틀린 것 자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오역을 하고도 오역을 했으리라 짐작도 못하는 것이죠. 실록을 번역하다가 단 두 글자가 석연치 않았던 일이 있습니다. 번역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데 그렇게 해놓자니 아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우 평범한 글자의 조합인데도 불구하고 한문에서는 그렇게 조합하는 일이 없는 글자였습니다. 하루를 다 들여 결국 그 글자의 출전을 찾아 낸 일이 있습니다. 지금 그 기억이 떠오르네요.

    제 이력이 좀 재미있습니다. 한문을 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서른이 거의 다 되어서 한문을 새로 시작했는데, 그 여정을 함께하며 한문 공부의 매력을 아울러 알고 싶으시다면 <나의 첫 한문수업>을 추천합니다. 누군가는 이 책이 ‘공부 무협지’ 같다고 하더군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을 쉽게 접하길 원하시면 『공자의 말들』과 『맹자의 말들』을 추천합니다. 단언컨대 현재 대한민국에 출판된 논어와 맹자의 번역본 중 가장 쉽고 잘 읽힙니다.

    한문 공부에 도움을 받길 원하신다면 『하루 한문 공부』를 추천합니다. 사서를 가지고 어떻게 번역을 하는지, 문장 단위로 풀어놓았기 때문에 한문의 문장 구조를 공부하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마음챙김의 인문학』은 한국 한문 고전을 에세이로 풀어낸 책이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는』 동양고전을 가지고 에세이로 풀어낸 책입니다. 편안하게 고전을 접하며 사색하고 싶으시다면 두 책을 추천합니다. <마음챙김의 인문학>은 한시(漢詩)도 몇 편 있어서 독자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이번 강의에 도움이 되는 책은 『공자의 말들』『맹자의 말들』, 그리고 『하루 한문 공부』입니다. 기타 원하시는 사서 관련 책은 어느 것을 보셔도 좋습니다. 자신의 독서 취향이나 좋아하는 문체를 따라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동양고전, 특히 유학이란 건 고루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기독교와 유학이 상충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번 강의를 꼭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참 아름다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정말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 생각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미술사학 대학원 진학을 접고 한문 공부로 진로를 바꾼 것은 유학의 내용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맹자를 읽다가 종종 감동받아 울곤 했습니다. 유학을 배우면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 오해했고,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외부에서 ‘기독교’라고 하면 가지고 있는 편견들 있잖습니까? 기독교를, 성경을, 제대로 읽어가고 공부해나가는 사람들이 들으면 정말 안타까운 그런 오해와 편견들 말입니다. 그런 편견이 유학에도 진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6주간 ‘동양고전’ 중에서도 유학을 살펴볼 계획입니다. 사서(四書)를 교재로 진행해 갈 것입니다. 사서를 공부하는 순서는 ‘대학-논어-맹자-중용’입니다.

    강의 1. 강의 소개 및 『대학(大學)』

    우리 역사는 오랫동안 유학(儒學)을 사상적 토대로 하여 국가 체제를 형성하고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다가 구한말 일본에 의해 국권침탈을 당하며 너무나 급작스럽게 근대를 맞이했고, 이후 서양의 모든 것이 우리를 덮쳤습니다. 자연스럽게 유학과도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우리 정신의 근간을 형성했던 유학의 영향이 시대가 변했다 해서 급작스럽게 사라질 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려면 당연히 유학을 알아야만 합니다. 다만 동양철학에는 한문이라는 장애물이 있어 선뜻 손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옛글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생각해보려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서(四書) 읽기 첫걸음에 들어가 먼저 『대학』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사서는 송나라 철학자 주희가 공부하는 순서로 유학의 기본서를 배치해 둔 것인데, 왜 『대학』을 본격적인 공부의 맨 처음에 두었는지 이 책의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강의 2. 『논어(論語)』(1) – 공자와 공자의 시대

    먼저 공자가 살았던 시대와 그 이전 시대 등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논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그리고 공자의 일대기를 개관하고, 『논어』의 본문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자’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강의 3. 『논어(論語)』(2) – 공자 사상의 주요 개념

    공자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개념이 ‘인(仁)’이 아닐까요? 공자가 말한 인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논어』의 본문을 통해 이해해보려 합니다. 이를 위해 아울러 필요한 개념인 ‘직(直)’과 ‘예(禮)’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겠습니다.

    강의 4. 『맹자(孟子)』(1) – 맹자와 맹자의 시대

    맹자 역시 시작은 그의 시대를 이해하는 것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공자의 시대와 무엇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살펴보면서 맹자가 그 시대에 무엇을 꿈꾸려했는지를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또한 맹자라는 인물에 대해서 『맹자』의 내용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강의 5. 『맹자(孟子)』(2) – 맹자

    ‘맹자’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성선론(性善論)’이 아닐까요? 인간은 과연 그 본성이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시의 본성론들과 함께 맹자가 성선론을 주창한 까닭과 그 내용에 대해 『맹자』의 본문을 통해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강의 6. 『중용(中庸)』

    이런저런 격렬한 논의가 오갈 때면 유학이 익숙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이 ‘중용’입니다. 중용을 취해야 한다, 중용을 취하겠다는 말을 많이들 하곤 합니다. 중용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중간’을 의미할까요? 중용이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또 주희는 『중용』을 왜 사서 중 맨 마지막 책으로 놓게 되었는지 『중용』의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6주간 네 권의 책을 살펴보는 것은 몹시 버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일단 무겁지 않게 훑어보며 한 권 한 권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방향으로 강의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유학의 큰 틀을 거칠게나마 그려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루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동양고전 ‘사서(四書)’와 함께 몸도 마음도 익어갈 뜨거운 여름날이 벌서 기다려집니다. 7월에 반갑게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터뷰 | 류동규 교수

    인터뷰 | 류동규 교수

    겨울은 깊고도 길었습니다. 광장에 모인 촛불이 얼어붙은 공기를 가르고 타올랐던 그 계절, 우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외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겨울은 지나고 봄은 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있습니다.

    2025년 뷰티풀인문학 두 번째 학기의 첫 문을 열어주실 분은 경북대학교 국문학과의 류동규 교수님입니다. 주제는 「김교신, 한국 기독교의 길을 묻다」입니다.

    김교신, 그는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도 성서와 삶을 떼어놓지 않으며, 시대를 정직하게 응시했던 인물입니다. 교회 안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복음을 살고자 했던 그의 신앙은, 지금도 민족과 시대를 향해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교신이 남긴 흔적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귀 기울이며, 류동규 교수님과의 일문일답을 시작합니다.

      김교신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21년 VIEW에 방문교수로 와서였습니다. 세계관 기초 강의를 청강하면서 김교신에 관해 다룬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 책도 좋았지만 그보다 김교신의 텍스트를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마침 뷰 도서실에 『성서조선』 영인본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걸 읽게 된 것이 김교신을 공부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김교신은 1901년에 태어나 1945년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까 철들 무렵부터 평생을 식민지인으로 사셨습니다. 1920년에 일본으로 유학해서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는데 그 무렵 일본 무교회주의자인 우치무라 간조에게서 성서를 배웠습니다.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것이 1927년이었는데 그때 무교회주의 잡지인 『성서조선』을 창간해서 1942년 폐간될 때까지 15년간 158호까지 『성서조선』을 간행했습니다. 교사로, 잡지 편집자로서, 무교회 사상가로서 일생을 살았던 분입니다.

      김교신의 실천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역시 『성서조선』을 간행한 일이었습니다. 김교신이 『성서조선』을 창간하면서 ‘가장 사랑하는 조선에 가장 귀한 선물인 성서를 주고자’ 『성서조선』을 창간한다고 말했습니다. 양정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성서조선』을 매달 간행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밤을 새면서 집필해야 했고, 교정과 우편발송, 서점 배달 등을 모두 혼자서 감당했습니다. 자신의 월급을 헐어서 잡지를 내야 했고, 검열과 언론통제정책으로 인해 폐간의 위기를 수도 없이 겪어야 했습니다. 이 일을 15년간 꾸준히 해낸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성서조선』은 그가 창간할 때 마음에 품었던, ‘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려는 사상을 펼친 잡지로서 한국 기독교가 남긴 큰 자산입니다. 이밖에도 그의 교사로서의 실천, 또 무교회 전도자로서의 실천도 말해야 하겠지만 강의에서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교신 선생의 따님의 인터뷰를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김교신의 사상을 교회주의의 입장에서 보는 것은 좋은 관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리어 교회를 상대화한 자리에 설 때 김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 은연 중에 교회를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를 상대화한다는 건 우리가 속한 교회가 특정한 시대, 특정한 문화 속에 있고, 그런 특정한 방식으로 형성된 제도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근대의 기독교이고, 미국을 통해 전해진 특수한 복음주의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 서게 되면 김교신이 교회의 본질을 어떻게 말했느냐고 묻는 것보다 김교신이 마주했던 역사적 교회는 어떤 것이었는지, 그 제도교회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고 그 입장에서의 삶과 실천이 가지는 의미와 한계가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일부 기독교 세력은 특정 정치세력을 거의 종교화하며,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탄핵 반대, 반공 이데올로기, 극단적 민족주의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김교신의 신앙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그 터가 매우 좁아져 있습니다. 기독교가 아주 위험하고 편향된 집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김교신의 기독교, 김교신의 무교회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넓고 활달한 사상이었습니다. 이걸 한두 마디의 가르침으로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강의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교신의 무교회의 견지에서 한국 사회와 한국의 기독교회를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교신의 일기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성서조선』에 그는 공적 일기를 기록했습니다. 거기에는 사적인 내용도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일기에서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진지한 신앙인의 구도적 삶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감동적인 포인트는 너무 많아 일일이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김교신의 글을 문학의 입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두꺼운 서사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제가 강의에서 말씀드리려는 것도 김교신의 삶과 사상을 그 시대의 맥락에 놓고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책을 두 권 준비 중입니다. 하나는 김교신의 공생애에 관한 문학적 전기입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강의 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문학적 전기라고 했는데요. 이런 장르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김교신의 삶을 이야기하되, 그의 글에 드러난 것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것, 김교신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 행동을 하게 된 내면의 사정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또 김교신의 텍스트를 읽되 텍스트의 맥락을 세세히 드러내어 읽고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연관을 꼼꼼히 따져 읽고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김교신의 일기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서 김교신의 나날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이 책 역시 김교신의 내면의 사정들, 주변에 있는 풍경들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김교신에 관해 공부하려면 박상익 교수의 『지사적 그리스도인, 김교신』(근간)이 가장 좋은 책인데, 아직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곧 출간될 거라고 하니까 조금 기다렸다가 이 책을 읽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강의개요 | 김교신, 한국 기독교의 길을 묻다

      김교신은 1901년생으로, 철들 무렵부터 식민지인으로 살다가 1945년 4월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교신의 공생애를 1927년부터 1945년까지로 볼 수 있는데, 그는 이 시기의 대부분을 교사로, 『성서조선』 주필로 살았다. 그의 공생애 기간 대부분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긴 전쟁의 와중에 있었으니, 우리 근대사에서도 가장 어둡고 야만적인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야만적인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길인지, 어떻게 하면 신앙을 실생활에서 드러낼 수 있는지 깊이 고민했고, 그 답을 성서에서 찾기 위해 성서를 진지하게 연구했다.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이 참된 삶이라는 믿음으로, 성서라는 등불 하나 들고 그 시대의 어둠을 비추었던 사람, 그래서 그 빛 주위로 신앙의 동지들 몇 사람 불러모아 서로 기대어 그 어두운 시대를 건너갔던 사람. 지금 한국 기독교는 김교신에게 길을 물어야 할 때다.

      1강 조선산 기독교의 모색 (1920-1927)

      청년 김교신은 1920년 도쿄 유학 중 기독교에 입문했고, 1921년부터 우치무라 간조의 강연회에 참석하면서 무교회 전도자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1927년 7월 우치무라 강연에 참석하던 여러 동인들과 함께 『성서조선』을 창간하게 된다. 이 무렵 김교신과 조선인 청년들이 『성서조선』을 창간하면서 꿈꾸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2강 단독으로 서다 (1928-1931)

      1930년 6월 동인제가 폐지되고 김교신이 『성서조선』 편집을 단독으로 맡게 된다. 이 무렵 김교신은 칼라일을 읽으며 이상적 인물을 구상하고 있었고, 성서연구회에서 산상수훈 연구를 강해하면서 조선을 일으켜 세울 윤리학을 모색하고 있었다. 김교신이 성서를 통해 찾고자 한 조선의 살 길은 무엇이었는가?

      3강 신앙과 학문의 합금 (1932-1935)

      1934년 동계성서강습회에서 김교신은 「조선지리」를, 함석헌은 「조선역사」를 강의했다. 이 두 강의는 식민지 사관을 벗어나 섭리의 관점에서 조선 지리와 역사를 논의한 것으로 조선 기독교 50년 역사에 빛나는 성취였다. 김교신은 향후 기독교는 ‘신앙과 학문의 합금’이어야 한다고 했다. 김교신이 말한 ‘신앙과 학문의 합금’은 무엇이었는가?

      4강 소록도로 가리라 (1935-1937)

      1935년 3월 소록도 한센인 문신활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 김교신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 일 후 『성서조선』은 소록도에서 온 편지를 다수 수록했고 독자들이 이 편지에 응답함으로써 『성서조선』은 새로운 사명으로 다시 뜨거워졌다. 『성서조선』은 한센인들의 삶과 신앙을 전해주는 통로가 되었다. 소록도 통신은 <성서조선>에 무엇을 남겼는가?

      5강 강대한 괴물 앞에서 (1937-1941)

      1937년 김교신은 무교회가 더 이상 교회를 상대로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신사참배가 강요되고 있었고, 전쟁의 기운이 점점 더 짙어져 가고 있었다. 중일전쟁 이후 『성서조선』 간행은 더욱 어려워져 결국 1939년 신년호는 황국신민서사를 게재하게 되었다. 기독교는 ‘실로 강대한 괴물’과 마주한 상황이 었다. 김교신은 이 환난의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갔는가?

      6강 부활의 봄을 노래하다 (1942-1945)

      1942년 3월 『성서조선』에 「조와」와 「부활의 봄」이라는 글이 실렸는데 이 글이 빌미가 되어 『성서조선』은 폐간되고 김교신과 『성서조선』 관련자들은 검거되었다. 만 1년 만에 석방된 후 김교신은 일본질소비료공장 관리계장이 되어 조선인들의 삶을 향상하는 일에 헌신하다 1945년 4월 서거했다. 삶의 마지막 시기에 김교신을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1. 인터뷰 | 채예진 선생

      인터뷰 | 채예진 선생

      “20세기 전쟁과 관련된 영화들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입체적이고 구조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 놓치지 말고 함께해요!!!” 미처 등록하지 못한 <Viewtiful 인문학> 예비 수강생들에게 외치는 채예진 선생님의 초청 인사입니다.

      우리는 매일 평화를 갈구하지만 일상은 그저 총성없는 전쟁인 것만 같은 이때, <Viewtiful 인문학>에서는 1학기 두 번째 강좌로 전쟁의 역사를 제대로 탐구해보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박사연구를 하고 있는 ‘채예진’ 선생님이 바톤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2025년 4월 중순, 강의 시작을 앞두고 여러 가지 궁금한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채예진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강원도 고성에서 보냈고, 고등학교 시절을 경상남도 거창 기숙사학교에서 보냈습니다. 대학 때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지금은 주로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보냈던 어린시절은 제 정서와 감성이 마음껏 자랄 수 있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설악산 자락과 동해바다에서 뛰놀면서 읽고 싶었던 책을 실컷 읽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문화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 늘 아쉽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새로 배운 내용이 있으면 직접 가서 보고 싶은 욕구가 컸는데, 시골 바닷가 마을에서 목회를 하셨던 부모님께서 방학때마다 가보고 싶었던 역사 유적지나 박물관, 미술관, 음악회에 갈 수 있도록 애써주셨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납니다. 지금도 직접 가서 보고 느끼며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만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제 연구의 초점은 학령기를 거쳐 성인이 된 학습자들이 역사를 어떻게 배우고 또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입니다.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이 만들어지면서, 여러가지 역사 컨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학생들만큼이나 성인들의 역사학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현재의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을 관찰하면서 성인들에게는 어떤 역사교육과 학습이 필요할까, 라는 질문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는 성인학습자로서 역사교사의 평생학습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2017년을 전후로 가나안 성도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나안 성도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에 대해서도 때때로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어린시절 강원도 고성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셨던 부모님을 보면서 제가 배운 것과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 세계의 성인 학습자들이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 속에서 영화를 통해 근현대 역사를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획에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역사 공부는 제가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을 탐색하고, 또 제가 서있는 위치의 좌표를 가늠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언젠가 듣게된 어른들의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말을 했던 상황속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의 즐거움에 매료된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해를 완성했다기 보다는 이해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주로 오늘날과 밀접하게 관련된 근현대 시기의 한국사, 세계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학부에서는 국사학과 국제관계학을 공부했고, 석사과정에서는 동아시아사 전공으로 대만과 미국의 관계를 풀브라이트 학술교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문화냉전 차원에서 그 의미를 검토했습니다.

      학부와 석사과정을 거치면서 국사학과 공부만큼이나 ‘국제관계학과’ 강의를 열심히 들으면서 20세기의 국제관계, 질서변화, 외교정책 등을 다룬 책과 영화, 그리고 수업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어떤 위기상황, 문제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위기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언제, 왜,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났던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생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전히 분단국가인 한국의 상황이 저희 가족들의 삶, 가치관, 선택과 결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황해도가 고향이셨으나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실향민이 되신 외할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면서 20세기 전쟁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시골에서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늘 방과후에는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세계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때 저는 세계의 세계사 관련 영화들을 100여편 정도 모아서 보고 분석하면서 세계사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서울대학교 스누콤센터와 고등학교 등에서 근현대 세계사에 대한 특강 요청이 와서 학생들의 흥미와 역사적 이해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영화를 활용하여 20세기 전쟁사 수업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나 영상물은 어디까지나 실화를 모티브로 하지만, 재미를 위해 각색을 거친 작품입니다. 인물과 사건 등은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창조되었으므로 영화작품을 몰입해서 ‘감상’할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면, 당시 상황과 역사적 맥락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볼 수 있는 훌륭한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6.25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다룹니다. 20세기 전쟁들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면서 세계 질서의 변화, 그리고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역학 관계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영화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쉰들러리스트>, <피아니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지막 황제>, <진링의 13 소녀>를 추천합니다. 책은 김용구 선생님의 <세계 외교사>, 그리고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함께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추천합니다.  

      추천책

      전쟁은 생명을 무가치하게 짓밟는 잔혹한 상황을 국가의 이익을 위해, 우위를 점하기위해 정당화합니다. 생명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뿐만 아니라 특정 세력의 이익과 목적에 생명의 가치가 수단화되는 것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역사 공부는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세상의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생명으로서의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역사 공부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라는 주제가 다소 무거울 수 있지만, 저와 수강생 여러분들의 지난 100년간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더 깊게 알아가고 깨닫고 성찰하는 과정에 몰입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강의에서 절반 이상은 한반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진 전쟁 역사를 다루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20세기의 전쟁들이 미친 영향과 현재의 삶에도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20세기 전쟁과 21세기 오늘날의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에 초대합니다.

      전쟁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과 세계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입니다. 이번 강좌에서는 20세기의 주요 전쟁을 다룬 영화들을 통해 전쟁의 역사적 맥락을 탐구하고, 나에게 전쟁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 의미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전쟁이 어떻게 기억되고 재현되는지를 분석하면서, 전쟁이 개인과 사회에 남긴 흔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함께 고민할 것입니다.


      강의 1. 전쟁과 나: ‘나에게 전쟁이란?’

      전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영화 속 전쟁 재현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나에게 전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전쟁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는가, 특정한 서사를 만들어내는가? 20세기의 전쟁이 21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영화라는 매체가 전쟁의 경험과 기억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검토하고, 이후 강의에서 다룰 전쟁 영화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갑니다.

      강의 2. 제1차 세계대전: <1917>(2019)과 현대전의 시작

      제1차 세계대전은 산업화된 대량 살상의 시작이었으며,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영화 <1917>은 참호전과 병사 개개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전쟁의 극한적인 모습을 담아냅니다. 본 강의에서는 전쟁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를 탐구합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년이 넘은 오늘날, 우리는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이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논의합니다.

      ✦ 질문: “1917” 속 병사들의 경험을 오늘날의 우리와 연결할 수 있을까? 현대의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 경험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강의 3. 제2차 세계대전: <인생은 아름다워>(1997)와 전쟁의 인간성

      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 질서를 완전히 뒤바꾼 전쟁이었으며, 특히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은 인간성의 극단적 파괴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전쟁과 학살의 현실 속에서도 인간성이 유지될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본 강의에서는 전쟁이 인간성에 미치는 영향, 폭력과 사랑이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합니다. 또한 전쟁의 기억이 후세대에게 어떻게 전승되며, 우리는 그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논의합니다.

      ✦ 질문: “인생은 아름다워” 속 아버지의 선택은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이 지켜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가? 반대로, 전쟁은 인간성을 얼마나 쉽게 무너뜨리는가?

      강의 4. 한국전쟁: <국제시장>(2014)과 전쟁의 여파

      한국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전쟁이 한 가족과 개인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보여주며, 한국전쟁의 기억이 경제 발전과 이산가족 문제, 그리고 분단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색합니다. 본 강의에서는 한국전쟁이 남긴 사회적·정치적 영향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합니다.

      ✦ 질문: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한국전쟁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한국전쟁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강의 5. 베트남전쟁: <포레스트 검프>(1994)와 전쟁의 후유증

      베트남전쟁은 미국 내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전쟁 중 하나로, 참전 용사들의 트라우마와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전쟁의 전투 자체보다는 전쟁 이후 개인과 사회가 겪는 변화를 조명합니다. 본 강의에서는 베트남전쟁이 참전 군인들에게 남긴 정신적·사회적 상처를 탐구하고, 전쟁을 둘러싼 정치적·도덕적 논쟁을 분석합니다.

      ✦ 질문: 전쟁은 단순히 총과 폭탄이 오가는 순간에만 존재하는가, 아니면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개인과 사회에 깊이 새겨지는가? 전쟁 이후의 삶에서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치유해야 하는가?

      강의 6. 전쟁의 기억과 나: ‘나에게 전쟁이란?’을 다시 묻다 

      이번 강의를 통해 우리는 20세기의 주요 전쟁이 21세기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탐구했습니다. 이제 다시 ‘나에게 전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차례입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의 기억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전쟁을 다룬 영화는 우리에게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도록 만드는가? 또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전쟁(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본 강의에서는 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서 활용되거나 왜곡되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전쟁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논의합니다.

      ✦ 질문: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세계에서,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봄날은 오고 새싹은 움틉니다. 영화와 전쟁의 조합이 기대되는 4월의 봄날, 1학기 2번째 과목, 전쟁사 강좌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인터뷰 | 박흥식 교수

      인터뷰 | 박흥식 교수

      혹독한 겨울을 보내며 우리의 고민과 자성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역사에 남을 뉴스들로 채워지고 있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VIEWtiful 인문학>은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의 지적근력을 키워나가는 작은 배움터이자 연대의 끈이 되고자 합니다.

      저는 현재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전공 분야는 ‘중세 말기 유럽 도시사’이고, 중세 유럽의 사회경제사, 일상생활사, 교회사, 흑사병의 영향 등에 대한 다수의 연구논문을 집필하였습니다. 교회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21세기북스, 2017) 책을 집필하였고,  24년도에는 중세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조망한 『중세와 그리스도교』(홍성사, 2024)를 썼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한국교회를 위해 교회와 세상을 잇는 플랫폼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약 1년 반 전에 서울대학교에서 최종원 교수님, 전성민 원장님, 우종학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함께 했던 분들과 제 생각을 나누면서 최종원 교수님께 기획을 좀 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뷰티플 인문학은 그와 같은 만남과 구상들이 축적되어 탄생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인문학, 과학, 역사학, 신학 등 다양한 학문이 건강한 교회와 사회를 만드는데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황제도는 고대에 기원하여 현재까지 존속하는 매우 예외적인 제도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한 것은 중세시대였습니다. 이 제도가 정착하고 여러 역할을 수행하기까지는 기독교의 발전이라는 종교적 측면이 전제되지만, 그와 동시에 교황이 유럽 역사의 전개에서 차지해 왔던 고유한 역량 및 지도력에도 기인하였습니다. 세계사의 전개에서, 교황에게 종교적 역할과 더불어 정치적 성격이 특히 두드러지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처음부터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톨릭의 다양한 성격과 특징들은 개신교의 발전에도 여러 형태로 영향을 끼쳤고, 모델로도 작용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교황권의 역사는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의 토대를 이해하고 성찰하는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본질을 지니고 있지만, 많은 요소들은 역사적 과정에서 새로운 필요에 의해 채택되었고, 내외적 요인들에 의해 구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변화가 무엇이었는지, 교황제도와 교회에 어떤 새로운 요소들이 가미되었는지, 이것이 기독교 정신 및 본질을 훼손하지는 않았는지, 검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황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에도 세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교황의 발언 하나, 행적 하나가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뉴스가 되어 전파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교황사에 대한 책이 수없이 많지만 학문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또 많이 읽히는 책들이 개신교 학자들에 의해 집필되었습니다. 반면 가톨릭 연구자들이 교황사 연구와 서술에 오히려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교황은 종교사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입장에 있으시든지 들어 두시면 교황과 바틴칸을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무 큰 기대를 하시면 실망하실 것 같습니다만…^^)

      저는 교황이 종교지도자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 왔지만, 종종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려는 욕구를 제어하지 못했고, 또 폐쇄적인 조직 문화에서 중요한 문제를 독단적으로 결정함으로써 과오를 범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교황이 고독하게 결단해야 할 부분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그런 실수들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노출시키고 성찰하는 것이 역사학이 해야할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시기 당시에 복음주의 지도자들도 “마치 교황같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개신교 목사들이 “개교회 내에서 마치 교황 같은 지위를 갖고 있다”고 비판받아 왔습니다. 한국교회가 계엄 이후의 정국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길게 설명드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일부 목회자들이 정치적으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보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교인들을 내세워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해 이해가 낮은 일부 목회자가 전횡을 일삼아 공동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습니다. 교회의 개혁과 개선이 시급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제자리를 찾는 성숙한 교회공동체가 절실합니다.

      반면, 현재 종교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도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황은 교회를 개혁하고, 세상의 불의를 비판하고, 약자를 끌어안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환경과 기후변화 등 인류 보편의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500년만에 이런 역전현상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개신교는 성찰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학교 때 펄벅의 『대지』라는 소설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 때 갖게 된 인간에 대한 관심에 끌려 결국 역사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역사학 연구의 주요 대상이 다양한 인간들 및 주제들이고, 필요에 따라 연구의 이슈를 늘 새롭게 설정해 예기치 않은 성과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역사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큰 보람과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오래 전 한 청년이 제게 자신이 『성경』을 읽을만한 동기를 제시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구약성경의 경우 최소 2000년 전에 쓰여졌지만,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본질에 대해 그토록 깊게 간파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전에 쓰여진 성경이 인간에 대해 그토록 깊은 통찰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라고 즉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고, “세상이 어떻게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다양한 종류의 역사책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책은 강의 주제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물으시니 간략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근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역사학에서도 기후가 초래한 영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기후가 전염병과 사회변화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기존에도 일부 연구가 있었으나, 영국의 경제사학자 브루스 M. S. 캠벨(Bruce M. S. Campbell)이 2016년 저술한 『대전환. 중세 말 세계의 기후, 질병, 그리고 사회 The Great Transition. Climate, Disease and Society in the Late-Medieval World』는 시의성은 물론이고, 주제, 학술적 깊이, 그리고 학제간 연구의 성과라는 점에서 주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문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기후 변화가 팬데믹의 발병과 인간 사회 및 경제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13세기 말에서 15세기 사이 시기를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치밀하게 연구했습니다.

      이 책에는 제가 연구하고 있는 흑사병에 대해서도 최신 성과가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자연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연세대학에서 대기학을 가르치시던 노의근 교수님과 공동으로 번역했습니다. 힘이 많이 들었지만 공부도 많이 되었습니다. 이제 역사가들은 자연의 변화, 과학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좀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 역사서술에 반영해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교황사에 대한 국내 저서 중 제가 읽어본 좋은 책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신 서양서 몇몇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데, 강의를 들으며 함께 읽을 좋은 책은 교황사 연구자 푸어만의 책입니다. 그리고 제가 2024년에 집필한 『중세와 그리스도교』에도 교황에 대한 내용을 책 곳곳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두 책의 내용이 강의의 뼈대를 이루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호르스트 푸어만, 『교황의 역사. 베드로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 차용구 역(길, 2013)

      박흥식, 『중세와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 세계의 안과 밖』(홍성사, 2024)

      저는 이번 강의에서 기독교가 지나온 과거를 교황 중심의 제도교회를 통해 성찰하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회란 무엇이었나? 당대 사회의 문제에 교황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등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볼 것입니다.


      강의1. 로마제국과 교황

      밀라노 칙령을 전후로 기독교는 질적인 변화를 하게 되고 교황의 위상도 변모했다. 로마제국과 교황이 상호작용하며 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기독교에는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강의2. 프랑크 왕국과 교회

      게르만 왕국의 개종, 교황의 잉글랜드 선교 시도, 그리고 카롤링가와의 연대는 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서유럽 지역에서 얻은 크고 작은 성과가 교황 중심 체제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토대가 되었음을 규명하게 될 것이다.

      강의3. 개혁교황과 황제

      서유럽에서 수도원 개혁운동은 개혁 교황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개혁적인 움직임이 대규모 수도회의 등장과 서임권 갈등이라는 교황권 강화를 위한 싸움으로 귀결된다. 반면, 정작 기독교적 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 이유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강의4. 절정기의 교황

      교황권이 절정기에 가까이 가던 11세기 말 교황과 가톨릭 세계는 왜 동방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났던 것일까? 200년에 걸친 원정이 한시적으로 교황권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절정기의 교황들은 당대에 정작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강의5. 교회의 위기? 교황권의 위기?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종결된 후 교황권은 큰 위기를 맞는다. 교황이 로마를 버리고 아비뇽에 머물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가까스로 로마로 귀환하지만 그 후에는 ‘르네상스 교황’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 무렵 교황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던 것일까?

      강의6. 교황과 종교개혁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에 결정적인 위기였다. 반면 개혁세력은 정의의 세력으로 표현됩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지나칠 정도로 루터, 나아가 종교개혁가들의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다. 교황의 관점에서 종교개혁을 재해석한다면 어떤 점이 달리 보일까요? 그리고 교황청은 개혁가들의 비판에 맞서 어떤 변화를 선택하게 되었나?


      다소 거칠게 표현했지만, 이 강의에서는 로마제국기에서 종교개혁기까지 교황과 교황권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며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우리들의 사고와 이해를 확장시켜 보고자 합니다.

      여전히 찬바람이 불더라도 반드시 오고야마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3월에 뵙겠습니다.

      지면으로나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