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색이 하나가 아니듯, 단풍 한 잎에 십수 개의 색을 담고 있듯,
한 해의 끝을 향하며 우리네 삶도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무르익은 일상의 색에 신앙과 예술로 진하게 화두를 던져 줄, 2025년 마지막 강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문화에 녹아든 예술, 특히 현대미술을 그리스도인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마치 일정 거리를 둬야 하는 경계의 영역처럼 여겨 왔습니다. <VIEWtiful 인문학> 3학기 두 번째 강의는 낯설고도 가까운, ‘현대미술’이라는 도구로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기독교적 가치와 현대미술이 담아내는 언어의 만남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까요?
그 대화의 중심에서 이끄실 분은, 미술사와 기독교 문화학을 공부한 뒤, 현재 밴쿠버에서 수많은 신학 저서들을 번역하고 계시는 백지윤 선생님이십니다. 강의에 앞서, 반갑게 지면으로 만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신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접근 자체가 신선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강의가 기대가 됩니다.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르는 수강생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도 VIEWtiful 인문학 강좌에서 제게 가장 중요한 신앙과 예술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강의를 하게 되어서 기쁘고 기대가 됩니다. 대학 시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름 극적인(?) 회심을 한 뒤, 내가 공부하는 전문 영역 역시 기독교 신앙과 통합할 수 있고, 통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학원에서 전공하던 ‘현대미술사/미술이론의 영역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평소 유진 피터슨, 제임스 패커 등의 책을 읽으며 동경하던 캐나다 밴쿠버의 리젠트 컬리지로 유학을 오게 되었어요. 본격 신학을 공부하려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원래는 리젠트에서 짧게 공부를 마친 후 미술사 박사 과정을 이어갈 계획이었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계획이 바뀌었고 어쩌다보니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감사하게도 미로슬로브 볼프, 톰 라이트, 티시 해리슨 워런 등 훌륭한 신학자와 기독교 사상가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번역 일을 꾸준히 하면서도 한편으론 오래 전 품었던 기독교와 현대미술의 간극을 잇는 역할에 대한 아쉬움과 부담감이 늘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VIEW 콜로키움에서 평화와 현대미술을 연결해서 살펴보는 특강을 할 기회를 얻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21년부터 미주 코스타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세미나 강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요즘은 <복음과 상황>에 “예술, 구원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쓰다 보니 간단한 소개가 아니라 너무 길어졌네요.
Q 이번 강의 주제가 ‘기독교와 현대미술의 대화’인데요. 광범위한 예술의 영역 안에서도 특히 ‘현대미술’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개인적인 경험이 있으신지요?
그동안 교회에서 관심을 갖는 예술은 기독교적 주제와 도상이 좀 더 분명하고 풍부했던 과거의 고전적 미술에 제한되어 있었지요. 그에 반해 저항과 도전의식이 강한 도발적인 현대미술은 낯설고 뭔가 위험한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고요. 특히 오늘날 타락한 세상의 문화속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주장하고 기독교적 가치를 관철해야 한다는 ‘문화 전쟁’ 패러다임은 현대미술에 대한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부추겼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현대미술을 제대로 알고 배우려는 노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무지에 근거한 배제와 단절의 골만 깊어갔고요. 제가 대학원에서 전공한 분야가 현대미술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런 간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잇는 다리의 역할이 얼마나 부족하고 필요한지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평소 낯설고 난해하게만 다가왔던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Q. 물론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은 ‘어렵고 난해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작품 해석에 따라 감흥이 천차만별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현대미술을 바라볼 때 지녀야 할 기준점 같은 것이 있을까요? 특별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나 더 집중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현대미술이 어렵고 난해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아요. 어쩌면 예술, 특히 시각예술이란 쉽게 이해되고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혹은 어떤 노력이나 선지식 없이도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기대를 거스리는 게 현대미술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에 대한 해석이 관객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 역시 오히려 현대미술이 의도하는 바이기도 하고요. 처음엔 납득이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현대미술이 발전해온 고유의 내러티브와 전통을 알고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Q. 지금까지 교회가 바라보는 현대미술에 대한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현대미술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어떤 새로운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강의중에 풀어나가실 이야기지만 짧게 정리해본다면요.)
앞에서도 말했듯 교회가 현대미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경계했던 이유를 다시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교회 내의 많은 부분이, 교회 밖의 이들에게는 폐쇄적이고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현대미술보다 더 잘 드러내주는 것도 없으니까요. 어렵고 난해하고 심지어 위험해 보이는, 우리의 경계 너머에 있는 현대미술의 세계로 다가서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나와 다른 낯선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화의 환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미술은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우리 자신과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해주고, 결국 인간의 충만함을 회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동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갇혀 있던 좁은 틀을 보게 하고, 인간 본연의 자유를 좀 더 온전히 누리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이지요. 한스 로커마크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이 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했던 것처럼요.
Q. 기독교와 현대미술의 대화에서 ‘평화, 환대, 아름다움, 새 창조’라는 키워드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을 현대미술과 연결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기독교와 현대미술의 세계를 연결하고자 할 때, 기존의 일방적 선포와 가르침의 방식을 벗어나서 쌍방향의 대화를 지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대미술 자체의 문법과 어휘, 작동 방식을 존중해야 하고요. 그렇지만 한편으론, 그 대화가 우리의 기독교 신앙에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화의 방향을 잡아갈 신학적 주제를 잘 선별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할 텐데요. 평화, 환대, 아름다움, 새 창조라는 주제는 어쩌면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은 주제이고, 그래서 더욱 주목하고 회복해야 할 중요한 신학적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더 깊이 탐구하고 발전시켜가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고요. 현대미술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바라볼 때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대화의 키워드로 잡아보았습니다.
Q. 강의를 준비하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와 닿았던 작가와 작품, 혹은 일상 속 경험담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하고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되면 좋겠고, 그런 점에서 무척 기대되고 설레기도 합니다. 그 중 구체적으로 하나만 예를 들자면, 독일 작가 볼프강 라이프가 생각납니다. 미니멀리즘의 예술 언어와 개념미술, 퍼포먼스의 테두리 안에서 작업하면서도, 재료와 작업 방식이 생태친화적인 작가인데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일깨워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밴쿠버 아트 갤러리를 방문했는데, 문을 닫을 시간이 거의 되어가던 무렵이었거든요. 빠른 속도로 갤러리를 훑어보는데, 얼핏 멀리서 미술관 스텝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뭔가를 닦고 있는 게 보였어요. 저는 문닫을 시간이 되니까 청소를 하나보다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밀크 스톤>이라는 라이프의 대표적인 작품을 관리하는 직원이었어요. <밀크 스톤>은 사각형 대리석 판의 윗부분을 아주 세밀하게 살짝 깎아서 그 위에 우유를 부어놓는 작품인데요. 그래서 아침마다 새로 우유를 붓고 전시장이 문을 닫을 때는 그 우유를 모두 닦아내야 하거든요. 전시 기간 내내 이 과정을 매일 반복하는 거죠. 제가 보았던 그 사람은 세 달 정도의 전시 기간 동안 그 일을 위해 미술관에서 임시로 고용한 직원이었는데, 로컬 아티스트라고 하더군요. 라이프의 유명한 작품을 우연히 직접 보게 된 것이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그 직원과 한참 동안 라이프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유쾌한 기억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을 도판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만날 때 느끼는 쾌감이 있거든요.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도 그런 경험을 꼭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Q. 그리스도인들이 현대미술을 어렵게 느끼지 않고, 신앙의 눈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일상의 향유를 누리고 싶은 사람에게 예술적 감성을 키울 수 있는 일종의 ‘팁(Tip)’을 주신다면요?
직접 경험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 뭔가를 알아가고 배울 때 쉬운 지름길은 없는 법이니까요.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C.S.루이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지요. “어떤 예술이든 우리에게 내미는 첫 번째 요구는 항복(surrender)이다. 보고, 듣고, 받아들여라. 당신 자신을 내려놓아라.”
‘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술관에 가거나 책을 보다가 마음을 훅 치고 들어오는 작품을 혹시 만난다면, 그 작품 혹은 작가를 현대미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창문, 혹은 입구로 삼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현대미술의 세계가 처음엔(저에겐 아직도 그렇답니다) 너무 방대하고 복잡다단하다보니, 솔직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잖아요. 한두 작가, 작품을 중심으로 찾아보고 공부하다보면, 그와 연관된 다른 작가나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면 조금씩 현대미술이 익숙해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현대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좋은 책이나 에세이를 읽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Q. 좀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선생님에게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더불어, 선생님에게 신학적 상상력은 무엇입니까?
예술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예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술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형상(image)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간의 창조적 행위, 우리의 인간됨을 가장 잘 표현하는 활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고유한 방식과 매체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지요.
마지막으로, 이번 여섯 번의 여정을 통해 함께 걸어 갈 수강생들에게 기대하는 점이나 당부할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먼저 현대미술이라는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에 관심을 갖고 수강을 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번에 현대미술의 세계를 통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평소에 가지고 있었을 경계심이나 거리감은 조금 덜어내고 그 자리에 친근함과 관심으로 채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우리의 삶과 신앙,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과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여유로워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너무 상투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매 시간 열린 귀와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미 내가 알고 믿는 것에 대한 확신보다는, 새롭게 발견하고 알아갈 것에 대한 기대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마다의 가을 색으로 삶을 물들이다가, 더욱 깊어진 가을날 함께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