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SysAdmin

  • 인터뷰 | 박흥식 교수

    인터뷰 | 박흥식 교수

    혹독한 겨울을 보내며 우리의 고민과 자성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역사에 남을 뉴스들로 채워지고 있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VIEWtiful 인문학>은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의 지적근력을 키워나가는 작은 배움터이자 연대의 끈이 되고자 합니다.

    저는 현재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전공 분야는 ‘중세 말기 유럽 도시사’이고, 중세 유럽의 사회경제사, 일상생활사, 교회사, 흑사병의 영향 등에 대한 다수의 연구논문을 집필하였습니다. 교회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21세기북스, 2017) 책을 집필하였고,  24년도에는 중세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조망한 『중세와 그리스도교』(홍성사, 2024)를 썼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한국교회를 위해 교회와 세상을 잇는 플랫폼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약 1년 반 전에 서울대학교에서 최종원 교수님, 전성민 원장님, 우종학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함께 했던 분들과 제 생각을 나누면서 최종원 교수님께 기획을 좀 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뷰티플 인문학은 그와 같은 만남과 구상들이 축적되어 탄생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인문학, 과학, 역사학, 신학 등 다양한 학문이 건강한 교회와 사회를 만드는데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황제도는 고대에 기원하여 현재까지 존속하는 매우 예외적인 제도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한 것은 중세시대였습니다. 이 제도가 정착하고 여러 역할을 수행하기까지는 기독교의 발전이라는 종교적 측면이 전제되지만, 그와 동시에 교황이 유럽 역사의 전개에서 차지해 왔던 고유한 역량 및 지도력에도 기인하였습니다. 세계사의 전개에서, 교황에게 종교적 역할과 더불어 정치적 성격이 특히 두드러지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처음부터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톨릭의 다양한 성격과 특징들은 개신교의 발전에도 여러 형태로 영향을 끼쳤고, 모델로도 작용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교황권의 역사는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의 토대를 이해하고 성찰하는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본질을 지니고 있지만, 많은 요소들은 역사적 과정에서 새로운 필요에 의해 채택되었고, 내외적 요인들에 의해 구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변화가 무엇이었는지, 교황제도와 교회에 어떤 새로운 요소들이 가미되었는지, 이것이 기독교 정신 및 본질을 훼손하지는 않았는지, 검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황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에도 세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교황의 발언 하나, 행적 하나가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뉴스가 되어 전파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교황사에 대한 책이 수없이 많지만 학문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또 많이 읽히는 책들이 개신교 학자들에 의해 집필되었습니다. 반면 가톨릭 연구자들이 교황사 연구와 서술에 오히려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교황은 종교사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입장에 있으시든지 들어 두시면 교황과 바틴칸을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무 큰 기대를 하시면 실망하실 것 같습니다만…^^)

    저는 교황이 종교지도자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 왔지만, 종종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려는 욕구를 제어하지 못했고, 또 폐쇄적인 조직 문화에서 중요한 문제를 독단적으로 결정함으로써 과오를 범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교황이 고독하게 결단해야 할 부분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그런 실수들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노출시키고 성찰하는 것이 역사학이 해야할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시기 당시에 복음주의 지도자들도 “마치 교황같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개신교 목사들이 “개교회 내에서 마치 교황 같은 지위를 갖고 있다”고 비판받아 왔습니다. 한국교회가 계엄 이후의 정국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길게 설명드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일부 목회자들이 정치적으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보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교인들을 내세워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해 이해가 낮은 일부 목회자가 전횡을 일삼아 공동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습니다. 교회의 개혁과 개선이 시급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제자리를 찾는 성숙한 교회공동체가 절실합니다.

    반면, 현재 종교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도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황은 교회를 개혁하고, 세상의 불의를 비판하고, 약자를 끌어안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환경과 기후변화 등 인류 보편의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500년만에 이런 역전현상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개신교는 성찰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학교 때 펄벅의 『대지』라는 소설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 때 갖게 된 인간에 대한 관심에 끌려 결국 역사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역사학 연구의 주요 대상이 다양한 인간들 및 주제들이고, 필요에 따라 연구의 이슈를 늘 새롭게 설정해 예기치 않은 성과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역사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큰 보람과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오래 전 한 청년이 제게 자신이 『성경』을 읽을만한 동기를 제시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구약성경의 경우 최소 2000년 전에 쓰여졌지만,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본질에 대해 그토록 깊게 간파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전에 쓰여진 성경이 인간에 대해 그토록 깊은 통찰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라고 즉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고, “세상이 어떻게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다양한 종류의 역사책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책은 강의 주제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물으시니 간략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근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역사학에서도 기후가 초래한 영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기후가 전염병과 사회변화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기존에도 일부 연구가 있었으나, 영국의 경제사학자 브루스 M. S. 캠벨(Bruce M. S. Campbell)이 2016년 저술한 『대전환. 중세 말 세계의 기후, 질병, 그리고 사회 The Great Transition. Climate, Disease and Society in the Late-Medieval World』는 시의성은 물론이고, 주제, 학술적 깊이, 그리고 학제간 연구의 성과라는 점에서 주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문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기후 변화가 팬데믹의 발병과 인간 사회 및 경제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13세기 말에서 15세기 사이 시기를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치밀하게 연구했습니다.

    이 책에는 제가 연구하고 있는 흑사병에 대해서도 최신 성과가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자연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연세대학에서 대기학을 가르치시던 노의근 교수님과 공동으로 번역했습니다. 힘이 많이 들었지만 공부도 많이 되었습니다. 이제 역사가들은 자연의 변화, 과학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좀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 역사서술에 반영해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교황사에 대한 국내 저서 중 제가 읽어본 좋은 책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신 서양서 몇몇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데, 강의를 들으며 함께 읽을 좋은 책은 교황사 연구자 푸어만의 책입니다. 그리고 제가 2024년에 집필한 『중세와 그리스도교』에도 교황에 대한 내용을 책 곳곳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두 책의 내용이 강의의 뼈대를 이루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호르스트 푸어만, 『교황의 역사. 베드로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 차용구 역(길, 2013)

    박흥식, 『중세와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 세계의 안과 밖』(홍성사, 2024)

    저는 이번 강의에서 기독교가 지나온 과거를 교황 중심의 제도교회를 통해 성찰하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회란 무엇이었나? 당대 사회의 문제에 교황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등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볼 것입니다.


    강의1. 로마제국과 교황

    밀라노 칙령을 전후로 기독교는 질적인 변화를 하게 되고 교황의 위상도 변모했다. 로마제국과 교황이 상호작용하며 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기독교에는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강의2. 프랑크 왕국과 교회

    게르만 왕국의 개종, 교황의 잉글랜드 선교 시도, 그리고 카롤링가와의 연대는 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서유럽 지역에서 얻은 크고 작은 성과가 교황 중심 체제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토대가 되었음을 규명하게 될 것이다.

    강의3. 개혁교황과 황제

    서유럽에서 수도원 개혁운동은 개혁 교황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개혁적인 움직임이 대규모 수도회의 등장과 서임권 갈등이라는 교황권 강화를 위한 싸움으로 귀결된다. 반면, 정작 기독교적 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 이유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강의4. 절정기의 교황

    교황권이 절정기에 가까이 가던 11세기 말 교황과 가톨릭 세계는 왜 동방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났던 것일까? 200년에 걸친 원정이 한시적으로 교황권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절정기의 교황들은 당대에 정작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강의5. 교회의 위기? 교황권의 위기?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종결된 후 교황권은 큰 위기를 맞는다. 교황이 로마를 버리고 아비뇽에 머물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가까스로 로마로 귀환하지만 그 후에는 ‘르네상스 교황’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 무렵 교황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던 것일까?

    강의6. 교황과 종교개혁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에 결정적인 위기였다. 반면 개혁세력은 정의의 세력으로 표현됩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지나칠 정도로 루터, 나아가 종교개혁가들의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다. 교황의 관점에서 종교개혁을 재해석한다면 어떤 점이 달리 보일까요? 그리고 교황청은 개혁가들의 비판에 맞서 어떤 변화를 선택하게 되었나?


    다소 거칠게 표현했지만, 이 강의에서는 로마제국기에서 종교개혁기까지 교황과 교황권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며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우리들의 사고와 이해를 확장시켜 보고자 합니다.

    여전히 찬바람이 불더라도 반드시 오고야마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3월에 뵙겠습니다.

    지면으로나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