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짙어진 녹음이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이란 것을 실감케합니다.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이 과실의 단맛을 내듯, 우리가 만날 무더운 여름날엔 ‘동양고전’의 별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2천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속에서 ‘고전’이 우러내는 깊은 맛과 현대에 새롭게 해석되어진 상큼발랄함을 동시에 느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2025년 <VIEWtiful 인문학> 2학기의 두 번째 강의를 열어가실 분은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위원이시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계시는 임자헌 선생님입니다. 평소에 혼자서는 쉽게 덤벼들지 못했던 동양고전에 대해 함께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요. 이번 <동양고전 첫걸음>에서는 동양고전 중에서도 유학의 핵심서인 사서(四書)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강의를 준비하고 계시는 임자헌 선생님께 궁금한 것들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VIEWtiful 인문학>의 강의를 맡게 되신 동기나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기독교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기독교 세계관을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인으로 자랐습니다. 어느 순간, 기독교란 교회에 가서 늘 비슷한 설교를 듣고 헌금을 하는 그저 그런 일상의 반복일 뿐인가, 하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총체적 진리로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건 참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기독교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넓은 시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느날 즐겨보던 월간지 『복음과상황』에서 <VIEWtiful 인문학>의 광고를 보았는데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강의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갑자기 이곳에서 제게 강의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제가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
Q.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어떤 계기를 통해, 고전연구에 깊이 빠져들게 되셨는지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동양고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학부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사회에서는 미술잡지 기자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미술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사실 중고등학교 때 대학진학을 미술 쪽으로 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잡지사에 있다 보니 한 단계 더 도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미술평론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자니 대학원 진학이 필요했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는 영어와 제2외국어를 해야 했습니다. 제가 이미 어느 정도 익혀두었던 제2외국어는 프랑스어였는데, 영어와 함께 준비하자니 둘 다 비슷한 언어권의 언어라 크게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2외국어를 바꿀 생각을 했습니다. 시험에 해당되는 언어들을 살펴보니 할 만한 게 ‘한문’이 있더군요. 어차피 미술잡지에서 전통미술 분야를 맡고 있어서 대학원 진학을 해도 전통미술 쪽을 전공할 것이었기 때문에 한문을 해두면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과감하게 프랑스어를 버리고 한문을 선택했고, 그때 처음으로 한문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한문을 『논어』로 접했습니다. 고루하기 그지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 걸? 공자는정말 합리적이고 세련된 사람이더군요. ‘오! 이름이 오래 전해지는 건 진짜 이유가 있는 것이구나’ 새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깊이 흥미를 느끼게 됐습니다.
Q. 많은 사람들이 ‘동양고전’ 관련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지만, 제대로 읽어보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딱딱하고 어렵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 요인은 바로 ‘한문’이라는 장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자를 잘 모르는 수강생들이 동양고전을 접할 때 어떤 식으로 부담을 덜고 접근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정말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완전 입말 현대 한국어로 『논어』와 『맹자』를 완역했습니다. 『공자의 말들』과 『맹자의 말들』이 바로 그 책이지요.
대체로 사람들이 동양고전에 대해 갖고 있는 참 재미있는 오해, 혹은 고집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동양고전은 한문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기독교인 중에 성경을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읽어야만 제대로 읽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리스 철학책을 보려면, 그러니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보려면 고전 그리스어로 봐야 한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난히 동양고전에서는 한문의 부담을 느끼십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스스로에게 맞는 쉬운 우리말 번역본을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익숙해지시고 나서 굳이 원문이 궁금하시면 그때 한문에 도전하시면 됩니다. ^^
Q. 이번 강의에서는 동양고전 중에서도 『대학』, 『논어』, 『맹자』, 『중용』으로 알려진 ‘사서(四書)’를 중심으로 다루십니다. 사서(四書)가 왜 중요한지, 사서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선은 유학을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이란 말이 지금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합니다. 그러나 유학을 제대로 배워 본 기억은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랜 생각의 뿌리는 유학에 있는데, 사실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유학은 상명하복을 중시하고, 어른 공경을 외치는 굉장히 고루한, 끝물의 변질로 가득한 유학이어서 유학을 배운 입장에서 안타까울 때가 참 많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신을 이해하려면 한반도에서 500년 이상을 이어왔던 유학을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이 사서(四書)입니다. 사서(四書)의 각각의 책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유학의 큰 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Q. 동양고전을 읽다 보면 유학의 인간 이해나 사회 질서에 대한 사유가 기독교적 신앙과 상충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사서(四書)’와 같은 동양고전을 읽고 배우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문을 처음 배울 때 교회에서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배워보며 느낀 것은 기독교와 충돌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죠.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로 통하는구나’ 새삼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요. 실제로 기독교를 조선에 받아들인 것은 조선의 유학자들이었는데, 정말로 그럴 만했습니다. 유학과 맞서는 면보다 도움이 되는 면이 크거든요. 아마 이번 강의를 통해 기독교와 통하는 유학의 아름다운 측면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Q.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위원으로 일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문의 특성과 고어(古語)들로 인해서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번역하는 일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번역과정 중 특별히 인상에 남는 개인적인 경험담이 있으실까요?
한문은 문법이 없습니다. 아예 없진 않지만 내재적 문법이라 문법책이 따로 있지 않고 사서(四書)를 통해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고유명사 표기나 인용 표기 혹은 문장부호가 없습니다. 의미절을 끊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한문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한문은 인용할 때 마음대로 글자 수를 줄여버리기도 합니다. 긴 문장을 단 두 글자로 축약해버리기도 하죠.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으면 내가 틀린 것 자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오역을 하고도 오역을 했으리라 짐작도 못하는 것이죠. 실록을 번역하다가 단 두 글자가 석연치 않았던 일이 있습니다. 번역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데 그렇게 해놓자니 아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우 평범한 글자의 조합인데도 불구하고 한문에서는 그렇게 조합하는 일이 없는 글자였습니다. 하루를 다 들여 결국 그 글자의 출전을 찾아 낸 일이 있습니다. 지금 그 기억이 떠오르네요.
Q. 『나의 첫 한문 수업』이나 『마음챙김의 인문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쓰셨습니다. 이번 강의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으신 책은 무엇인가요? 또한 강의와 관련하여 미리 읽어보고, 가장 참고할 만한 책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제 이력이 좀 재미있습니다. 한문을 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서른이 거의 다 되어서 한문을 새로 시작했는데, 그 여정을 함께하며 한문 공부의 매력을 아울러 알고 싶으시다면 <나의 첫 한문수업>을 추천합니다. 누군가는 이 책이 ‘공부 무협지’ 같다고 하더군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을 쉽게 접하길 원하시면 『공자의 말들』과 『맹자의 말들』을 추천합니다. 단언컨대 현재 대한민국에 출판된 논어와 맹자의 번역본 중 가장 쉽고 잘 읽힙니다.
한문 공부에 도움을 받길 원하신다면 『하루 한문 공부』를 추천합니다. 사서를 가지고 어떻게 번역을 하는지, 문장 단위로 풀어놓았기 때문에 한문의 문장 구조를 공부하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마음챙김의 인문학』은 한국 한문 고전을 에세이로 풀어낸 책이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는』 동양고전을 가지고 에세이로 풀어낸 책입니다. 편안하게 고전을 접하며 사색하고 싶으시다면 두 책을 추천합니다. <마음챙김의 인문학>은 한시(漢詩)도 몇 편 있어서 독자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이번 강의에 도움이 되는 책은 『공자의 말들』과 『맹자의 말들』, 그리고 『하루 한문 공부』입니다. 기타 원하시는 사서 관련 책은 어느 것을 보셔도 좋습니다. 자신의 독서 취향이나 좋아하는 문체를 따라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Q. ‘동양고전’에 대해 공부하기를 꺼리는 분들, 아직까지 강의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당부의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런 분들은 꼭 들어보셨으면 좋겠다’고 하는 권유랄까요?
동양고전, 특히 유학이란 건 고루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기독교와 유학이 상충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번 강의를 꼭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참 아름다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정말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 생각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미술사학 대학원 진학을 접고 한문 공부로 진로를 바꾼 것은 유학의 내용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맹자를 읽다가 종종 감동받아 울곤 했습니다. 유학을 배우면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 오해했고,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외부에서 ‘기독교’라고 하면 가지고 있는 편견들 있잖습니까? 기독교를, 성경을, 제대로 읽어가고 공부해나가는 사람들이 들으면 정말 안타까운 그런 오해와 편견들 말입니다. 그런 편견이 유학에도 진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6주간 펼쳐질 <동양고전 첫걸음>에 대한 강의 소개나 개요를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6주간 ‘동양고전’ 중에서도 유학을 살펴볼 계획입니다. 사서(四書)를 교재로 진행해 갈 것입니다. 사서를 공부하는 순서는 ‘대학-논어-맹자-중용’입니다. 『대학(大學)』은 말그대로 큰 학문입니다. 본격적으로 학문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죠. 학문에 입문하는 자들에게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그렇게 학문하는 자세와 마음가짐, 학문의 방향성을 점검해서 줄기를 세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에 들어갑니다.
첫 번째 책은 『논어(論語)』입니다. 논어는 잘 알다시피 ‘공자’의 말씀을 기록해 둔 책입니다. 유학은 공자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당연히 공자부터 먼저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펼쳤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가 왜 성자라 불리며 인류의 큰 스승이 되었는지, 그의 학문이 왜 세상을 이끌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의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공자를 이어 유학을 발전시킨 맹자(孟子)는 전국시대라는 전쟁의 시대에 인(仁)과 의(義)를 주장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가장 잔혹했던 시대에 서서 ‘인간은 인간다워야 하고, 그 인간다움 하나면 충분히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정말 그것이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을까요? 맹자의 본문을 통해 그 고민을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용(中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중용은 대학(大學)만큼이나 짧지만 내용은 아주 깊습니다. 그래서 작은 주역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유학을 관통하는 주제인 성(誠)을 중용의 내용을 통해 정리하며 강의를 맺고자 합니다.
6주간 네 권의 책을 살펴보는 것은 몹시 버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일단 무겁지 않게 훑어보며 한 권 한 권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방향으로 강의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유학의 큰 틀을 거칠게나마 그려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루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동양고전 ‘사서(四書)’와 함께 몸도 마음도 익어갈 뜨거운 여름날이 벌서 기다려집니다. 7월에 반갑게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